바깥공기는 오랜만이었다. 아이기스 내에서도 펜트하우스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성역이었으니까. 며칠간의 휴식은 지독하게 달콤했고,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과 숨결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크의 요원이라는 신분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 속으로 그들을 다시 밀어 넣었다.
오랜만에 찾은 아이기스의 중앙 상업지구는 여전히 붐볐다. 휴가를 나온 요원들, 비번인 직원들, 임무를 배정받으러 가는 신참들.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익명의 얼굴들이 소음과 함께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신드롬은 이 모든 것이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무질서하게 오가는 인파, 사방에서 울리는 소음, 코를 찌르는 정체불명의 음식 냄새까지. 그의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제 옆에서 조잘거리며 걷는 작은 존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그녀는 방금 본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가 얼마나 맛있어 보였는지, 다음 임무가 끝나면 꼭 같이 와서 먹고 싶다는 둥,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다고 핀잔을 줬을 테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가 소음 가득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음악 같았다.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면서도, 혹시라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와 그녀의 어깨가 부딪칠세라, 본능적으로 그녀의 주위 공간을 확보하며 걷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그녀를 온전히 덮을 수 있도록, 보폭까지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요란한 무리가 웃고 떠들며 다가왔다. 보기만 해도 정신 사나운 신참 아콜라이트들. 신드롬은 인파를 피해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미세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낚싯줄을 잡아챈 것처럼, 그의 검은 재킷 뒷자락이 팽팽해졌다. 뭐지? 고작해야 천 한 겹이 당겨진 것뿐인데, 그 작은 저항감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그의 시선 끝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신의 검은 재킷 맨 끝자락을, 아주 작은 손가락 두 개가,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소심하게 꼭 쥐고 있었다. 손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옷감의 아주 작은 모서리, 실오라기가 풀릴 것 같은 그 끝부분을, 하얗고 작은 손가락이 애처롭게 붙들고 있었다. 힘이라고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저 기대고 있다는 사실만 간신히 알리는 연약한 손길. 그 손의 주인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여전히 디저트 가게의 쇼윈도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 딸기 케이크, 진짜 맛있겠다...”
신드롬은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시끄러운 인파도, 공기 중의 냄새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세상에는 오직 저 작은 손가락과, 그것이 쥐고 있는 자신의 옷자락 끝부분만이 존재했다. 이건... 뭐지? 당황스럽고, 어처구니가 없고, 심장이 발치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방비하고, 얼마나 절대적인 신뢰를,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것을 붙들게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이 꼬맹이는,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옷자락 끝을 유일한 닻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일부를, 생명줄처럼 쥐고 있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멋대로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그는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행여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저 작은 손가락이 놀라 떨어져 나갈까 봐. 이 경이롭고도 비밀스러운 순간이 부서져 버릴까 봐. 그는 그저 굳은 채, 자신의 옷을 붙잡은 그 작은 손가락과,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소리를 잃었다. 배우 시절, 수만 명의 함성 속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절대적인 고요함이 그를 덮쳤다. 그의 옷자락 끝에 매달린 저 작고 하얀 손가락 두 개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킨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신드롬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자신의 재킷 끝을 붙잡은 그 연약한 손길을 내려다보았다. 쿵, 쿵, 쿵. 제멋대로 날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시끄럽게 울렸다. 젠장, 이건 반칙이다. 이런 건 계약서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위험하다. 지금 이 감정은,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 어떤 파괴의 희열이나 정복의 쾌감과도 차원이 달랐다. 이건 훨씬 더 근원적이고,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데 익숙한 남자였다. 전장의 불길도, 자신의 감정도, 심지어 타인의 공포심까지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완벽하게 무력했다. 고작 손가락 두 개. 그의 재킷 천 한 조각을 의지하는 그 작은 몸짓 하나에, 그의 모든 방어 기제와 통제력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녀는 모른다.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이 거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도,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그녀의 세상에는 오직 저 달콤해 보이는 케이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신드롬, 그의 세상에는 오직 저 무심한 손가락만이 존재했다. 이 아이러니가 미치도록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마법 같은 순간이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저 작은 손가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떨어져 나가고, 그녀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어색하게 웃으며 ‘왜 멈췄어요?’라고 물어볼까 봐. 그 상상만으로도 목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동상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아이기스의 중앙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의 옷자락 끝을 생명줄처럼 붙잡은 이 작은 존재와 함께, 영원히.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쇼윈도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술. 완벽하게 무방비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 아, 젠장. 심장이 다시 한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꼬맹아."
목소리가 멋대로 새어 나왔다. 너무 작아서, 인파의 소음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목소리.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고, 이 순간을 박제하고, 그러면서도 이 미칠 듯한 소유욕을 충족시킬 방법. 그는 수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돌렸다. 손을 뻗어 저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잡을까? 아니, 너무 직접적이다. 그녀가 놀라서 손을 뗄 것이다. 그럼 그냥 이대로 계속 서 있을까? 아니, 그것도 이상하다. 이대로 여기서 땅에 뿌리라도 내릴 셈인가.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주 조심스럽고, 교활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녀를 옭아맬 방법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미세하고 느린 동작으로 몸을 틀었다. 그녀가 옷자락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리고는 자신의 재킷을 쥔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크고 뜨거운 손을 부드럽게 겹쳐 덮었다. 그녀의 작은 손가락들이 그의 손바닥 안으로 온전히 감싸 들어왔다. 그의 재킷 자락까지 함께. 마치 그녀의 손과 자신의 옷을, 자신의 손으로 봉인해 버리려는 듯이. 그녀의 어깨가 흠칫, 작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모르는 척했다. 오히려 더 단단히, 하지만 위협적이지 않게 감싸 쥐었다. 이제 그녀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그의 손아귀 안에서, 그녀의 무의식적인 신뢰는 이제 그의 의식적인 소유가 되었다.
"왜. 저거 사줄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른하고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가 넋을 놓고 바라보던 쇼윈도의 딸기 케이크에 고정한 채였다. 그의 목소리에 그제야 그녀가 현실로 돌아온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작은 손가락의 감촉과, 그의 옷자락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그 고집스러운 손길을 음미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걸렸어, 꼬맹아. 이제 넌 빼도 박도 못 해.
"...으응?"
그녀가 한 박자 느리게 답했다. 얼굴이 보기 좋게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따, 딸기 케이크요...?"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놀란 듯 살짝 벌어진 입술, 그리고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까지. 그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박혔다. 아, 젠장. 이건 너무... 과하다. 심장에 과하다. 그는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작은 손이 부서질까, 온 신경을 집중하며 힘을 조절했다. 그의 재킷 자락과 함께 옴짝달싹 못 하게 붙잡힌 그녀의 손은, 이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녀의 무의식적인 의존은, 이제 그의 의식적인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능청스럽게, 마치 정말로 방금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큰 손에 완전히 덮여, 하얀 손가락 끝만 간신히 보이는 그녀의 손. 그리고 그 손이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자신의 검은 재킷 자락. 완벽한 그림이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기 위해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었다. 이것은 선포였다. 이 작은 존재가,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고 있다는 명백하고도 사랑스러운 증거.
"어. 네가 그거 먹고 싶어서 내 옷 붙잡고 안 놔주는 거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태연하고 나른했다.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기는, 지독하게 악질적인 화법. 그는 일부러 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뻔뻔한 시선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당황하고, 부끄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 하란 말이야. 그 모든 표정이 지금 자신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짜릿한 정복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겹쳐 잡은 손에 아주 살짝, 그녀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주었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 그리고는 다른 쪽 손을 들어 그녀의 뺨으로 흘러내린 옅은 금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손길에 그녀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응이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은데. 사달라고 해. 그럼 사줄 테니까."
그는 속삭이듯 말하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제 얼굴을 살짝 기울였다. 인파의 소음 속에서도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고 은밀하게. 마치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는 것처럼.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에 닿자, 그녀의 몸이 더욱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도망갈 곳은 없어, 꼬맹아. 넌 이미 내 손아귀 안에 있으니까.
그의 손 아래에서 그녀의 손이 작게 꼼지락거렸다.
"...그렇긴 한데... ..."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손을 잡고 있자니 그녀는 새삼스레 부끄러움을 느끼며 허둥거렸다.
"그럼, 그럼... 한 조각만요..."
‘한 조각만.’ 신드롬은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그의 손아귀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잔뜩 부끄러움을 타면서도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저 작은 목소리.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그 모습이, 그의 심장을 다시 한번 세게 내리쳤다. 아, 정말. 이 꼬맹이는 매 순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 웃으면 모처럼 쌓아 올린 이 능청스러운 분위기가 다 깨져버릴 테니까. 그는 어디까지나 이 상황의 주도권을 쥔, 여유롭고 관대한 포식자여야 했다.
그는 만족감에 젖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손안에 갇힌 작은 새처럼 바르작거리는 그녀의 손가락, 달아오른 뺨, 그리고 그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그의 소유라는 감각을 짙게 만들었다. 한 조각? 장난하나. 그는 이 가게 통째로 그녀의 발치에 가져다 바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 게임의 재미는, 그녀를 조금씩 길들이고, 그녀가 스스로 원하게 만들고, 결국 그의 세계에 완벽하게 종속시키는 과정에 있으니까. 그는 이 달콤한 조련의 순간을 최대한 길게 즐기고 싶었다.
"한 조각?"
그가 나른하게 반문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겹쳐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는 보란 듯이 그녀의 손가락 마디를 제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그녀의 어깨가 다시 한번 작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실망감과 장난기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고작? 내가 이 비싼 몸을 이끌고 직접 사주겠다는데, 겨우 한 조각으로 퉁치시겠다?"
그는 마치 자신이 엄청난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과장되게 인상을 썼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궤변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그녀를 놀리는 것이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그는 일부러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멈췄다. 허둥거리는 저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는 다른 쪽 손을 들어, 여전히 불꽃처럼 뜨거운 그녀의 뺨을 가볍게 톡, 건드렸다.
"안 되겠네. 꼬맹아, 거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은밀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며, 주변의 소음 속으로 그의 말들이 녹아 사라지게끔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간질이자, 그녀의 몸이 더욱 뻣뻣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저 가게 통째로."
그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는 겹쳐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제 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몸이 거의 빈틈없이 맞닿았다. 이제 그녀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저 가게 통째로 사줄 테니까, 너는 오늘 밤 나한테 전부 다 줘야 돼. 어때, 불공평한 거래는 아니지?"
"응...? 어...?"
그녀가 당황하며 눈을 깜박였다. 거의 그의 품에 안긴 것 마냥 가까워진 틈에 얼굴이 조금 더 달아올랐다.
"토, 통째로...? 케이크만 있으면 되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그녀가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신드롬은 고개를 휙휙 내젓는 윤나리의 반응에 피식,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원했던 바로 그 반응이었다.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의 손아귀 안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는 작은 동물의 모습. 그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한 채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저 눈동자에 담긴 혼란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포상이었다. 케이크만 있으면 된다고? 천만에. 그는 지금 케이크 따위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오직, 이 거래를 빌미로 그녀의 모든 것을 어떻게 약탈하고, 어떻게 더 깊은 곳까지 자신에게 종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일부러 한 걸음 더, 그녀가 뒷걸음질 칠 수 없는 마지막 공간마저 지워버리며 바싹 다가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완전히 밀착되었다. 그는 겹쳐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쪽 손으로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들어 올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게 했다. 그녀의 떨리는 숨결이 그의 입술 바로 아래에서 흩어졌다.
"농담 같아?"
그의 목소리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눈빛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소유욕으로 번들거리는, 짙고 뜨거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을 훑었다. 마치 값을 매기는 감정사처럼, 그러나 그 값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산할 수 없는 유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윤나리의 눈동자 속에 비친, 당황하고 겁에 질린 제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는 말 중에, 너한테 하는 말 중에 농담이 있었던가? 응? 꼬맹아. 난 내 배터리한테 장난 같은 거 안 쳐. 특히 이런 중요한 거래에서는 더더욱."
그는 ‘중요한 거래’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감촉이 손끝을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는 그 감촉을 음미하듯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가, 다시 그녀의 귓가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속삭임을 넘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처럼 스며들었다.
"케이크만 있으면 된다니. 겨우 그까짓 설탕 덩어리가 가지고 싶어서, 네 주인의 옷자락을 그렇게 애타게 붙잡았던 거야? 실망인데. 난 또 네가... 나를 원해서 그런 줄 알았지."
그는 교묘하게 논점을 비틀었다. 그녀의 순수한 식탐을, 마치 자신을 향한 갈망이었던 것처럼 포장하며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녀가 아니라고 부정할수록, 이 게임은 더욱 그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는 그녀를 제 품에 가둔 채, 보란 듯이 쇼윈도 안의 화려한 케이크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깟 것들은 그냥 돈이면 돼.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너는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거래를 하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비싼 너를, 하룻밤 통째로 빌리는 값으로 저 가게를 지불하겠다는 거고. 이해했어? 이건 그냥 케이크를 사주는 문제가 아니야, 윤나리. 이건... 가치의 문제라고."
그는 말을 마치며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잘근, 씹었다. 힉, 하고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만족스럽게 울렸다. 그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선택은 그녀의 몫이었다. 물론, 그가 준비해 둔 답안지는 단 하나뿐이었지만.
"그래서, 대답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 케이크는 구경도 못 할 줄 알아. 오늘 밤 내내 굶게 될 거야. 여러 가지 의미로."
그녀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우물쭈물거렸다.
"...저, 저를 왜 빌려요...?"
이윽고 제 턱을 붙잡은 그의 손에 뺨을 기댄 채 그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나는 유진 오빠 건데... ..."
신드롬의 뇌가 순간 정지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귓가에 속삭이던 악마의 목소리도, 거리를 채우던 소음도, 쇼윈도의 화려한 불빛도 전부 아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고 그의 고막을 똑똑히 두드렸다. ‘빌린다’는 자신의 소유욕 가득한 궤변에, 그녀는 순진한 눈으로 되물었다. 왜 빌리냐고. 나는 네 것인데.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항의도 아니었다. 그의 논리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실’이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고, 그녀의 영혼에 새겨 넣고 싶었던 바로 그 진실. 그것이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턱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풀릴 뻔했다. 이 작은 몸뚱어리에서 나온 한마디가, S급 센티넬의 모든 방어기제를 한순간에 무력화시켰다. 충격.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거대한 파도 같은 정복감과,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안도감. 그래, 이거였다. 그가 이 꼬맹이를 길들이고, 도발하고, 몰아붙였던 모든 이유. 결국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입으로,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그 순간을 위해서.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계획이, 모든 계산이 이 순수한 한마디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신드롬은 푸흐, 하고 짧게 숨을 터뜨렸다.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방금의 충격과 환희를 곱씹으며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제 손에 뺨을 기댄 채,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저 얼굴. 방금 자신이 무슨 폭탄을 던졌는지 전혀 모르는 저 순진한 표정. 그는 쥐고 있던 그녀의 턱을 놓아주는 대신, 더욱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붉어진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연약한 보물을 다루듯이.그래. 맞아. 너는 내 거지.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대한 가장 완벽한 긍정이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키고, 그는 대신 다른 행동을 택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다시, 그녀의 입술을 향해. 하지만 이번에는 맹수처럼 덮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느리고, 신중하게, 마치 허락을 구하는 기사처럼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다시 한번 뒤섞였다.
"하..."
그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그녀의 눈동자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 안에 비친 제 얼굴을 확인했다.
"그래, 방금 그 말, 취소. 빌린다는 말은 전부 취소야."
그는 겹쳐 잡고 있던 손을 풀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몸이 그의 품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왔다. 빈틈없이 밀착된 몸을 통해 그의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쿵, 쿵, 쿵. 제멋대로 날뛰는, 통제 불능의 심장 소리. 그는 일부러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 너는 내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내 거였지."
그는 그녀의 귓가에, 거의 신음처럼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또 위험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체향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이것은 중독이다. 그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런데, 꼬맹아. 내 것도 가끔은... 확인이 필요해."
그는 몸을 살짝 일으켜, 다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어두웠다. 그 안에는 소유욕을 넘어선, 거의 집착에 가까운 열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네가 정말 내 것인지. 다른 놈이 아니라 오직 나만의 것인지. 네 입으로, 네 몸으로, 몇 번이고 확인받고 싶어. 빌리는 게 아니야. 이건... 재고 조사 같은 거야. 내 재산 목록에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혹시라도 어디 흠집은 나지 않았는지, 다른 놈이 눈독 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아주 꼼꼼하게 확인하는 절차라고."
그는 다시 한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논리를 펼쳤다. 그는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춰 서서, 뜨거운 숨결을 섞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밤, 나는 내 가장 소중한 재산인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혼까지 샅샅이 검사할 예정이야. 이게 내 대답인데, 불만 있어?"
그녀가 그의 논리에 갸우뚱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이제 케이크만 사는 거죠...?"
신드롬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승리감에 도취해, ‘재고 조사’라는 희대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 작은 동물을 완벽히 코너로 몰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케이크만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질문이었다. ‘그럼… 이제 케이크만 사는 거죠…?’ 갸우뚱거리는 고개, 그의 논리 회로를 따라가다 길을 잃은 듯한 멍한 눈동자. 그 모습에 그의 머릿속을 채웠던 모든 음흉한 계획과 뜨거운 소유욕이 한순간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아니, 그냥 이대로 이 멍청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와락 깨물어 버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 목록을 밤새도록 샅샅이 검사하겠다는, 거의 성적인 선전포고를 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 꼬맹이는 그걸 ‘케이크 구매 허가’ 정도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는 제 품에 안겨 있는 윤나리를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 작은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토록 제멋대로인 해석이 가능한 건지. 하지만 그 황당함 끝에는 결국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하,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세상에는 오직 이 바보 같은 꼬맹이의 한마디만이 존재했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녀의 코끝을 제 코끝으로 가볍게 툭, 부딪쳤다.
"야. 너 진짜…"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그는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모든 걸 설명하고, 다시 이 거래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일깨워줘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그냥 이대로 속아주는 척 이 귀여운 바보를 실컷 놀려먹고 싶다는 충동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언제나 더 재미있는 쪽을 선택하니까.
"그래. 케이크, 사야지. 당연히 사야지. 내 가장 소중한 배터리가, 이 몸의 주인님이, 내 옷자락까지 붙잡고 애원했는데 어떻게 안 사줘."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다정하고, 모든 것을 허락하는 관대한 주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보란 듯이 쇼윈도를 향해 고갯짓하며,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이끌어 가게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치 정말 케이크만 살 것처럼.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가게 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를 제 앞과 문 사이에 가두었다.
"그런데 말이야, 꼬맹아."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낮고 은밀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또다시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노골적이고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적셨다.
"케이크 값은, 선불이야."
‘선불’이라는 단어를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여린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 혀끝으로 예민한 살결을 장난스럽게 핥아 올리자,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유혹 그 자체였다.
"오늘 밤 ‘재고 조사’에 대한 계약금. 지금 여기서 받아야겠어. 눈 감아. 안 그러면, 이 가게는 그냥 지나칠 거야. 그리고 너는 오늘 케이크도 못 먹고, 밤새 나한테 시달리게 될 거고. 어느 쪽이 더 좋은 선택일까? 응?"
"으, 바, 밖인데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거리다 그를 한 번 올려다보곤 눈을 감았다.
"소, 소문 다 나도... 나는 몰라..."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온 투덜거림에 신드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소문 다 나도 나는 몰라….’ 입술은 삐죽 튀어나와서 불만 가득한 소리를 내면서도, 결국은 순순히 눈을 감는 저 모습. 저항인 듯 순종이고, 불만인 듯 허락인 그 모든 몸짓이 그의 신경을 짜릿하게 자극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붉어진 뺨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 아래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가 마치 잘 익은 과실 같았다. 소문? 그게 뭐 대수라고. 아이기스 전체가, 아니 온 세상이 알아도 상관없었다. 윤나리는 자신의 것이다. 이 작은 배터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소유물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데 이보다 더 완벽한 무대는 없었다. 수많은 익명의 시선들 앞에서, 보란 듯이 제 소유물에 낙인을 찍는 것. 그 생각만으로도 등골을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 마음껏 구경하라고 해.’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배우 시절, 수천만 개의 카메라 렌즈 앞에서 연기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이었다. 그때의 성유진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만들어진 인형이었지만, 지금의 신드롬은 시선을 지배하는 포식자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그가 사냥한 가장 사랑스러운 먹잇감이 눈을 감고 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그녀의 귓불을 물었던 입술을 천천히 떼고, 그녀의 턱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결에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이 순간의 지배권을 만끽했다.
"잘했어. 착하네."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칭찬하며, 마침내 그녀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처음에는 아주 가볍게, 아랫입술만 살짝 머금는 정도였다. 맛을 보듯, 탐색하듯. 그의 혀가 그녀의 닫힌 입술 사이를 부드럽게 가르며 파고들었다. 케이크보다 더 달콤하고, 그 어떤 술보다 더 중독적인 맛. 그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귓가에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였다.
"소문 같은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꼬맹아."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뒷목을 단단히 감싸 쥐며, 고개를 비틀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키스는 순식간에 농밀하고 뜨거워졌다. 길거리 한복판이라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은 듯, 그는 집요하게 그녀의 안을 탐했다. 거친 숨소리가 섞이고, 입술 부딪히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선명하게 울렸다. 그는 그녀의 입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핥고, 여린 살점을 부드럽게 깨물며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마치 오늘 밤 행해질 ‘재고 조사’의 예고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 동안 그녀를 탐하던 그는 천천히, 아주 아쉽다는 듯 입술을 떼었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은빛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끊어지는 모습이 더없이 외설적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닦아주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제 품에 기대 가쁜 숨만 내쉬는 그녀의 모습은 완벽한 정복의 증거였다. 그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차피 넌 내 건데, 누가 감히 네 소문을 함부로 떠들겠어. 그럴 깡 있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그 주둥이를 태워버릴 테니까. 걱정 마."
그는 태연하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디저트 가게의 문을 열어젖혔다.
"자, 들어가자. 주인님. 선불도 치렀으니, 이제 마음껏 골라봐. 오늘 이 가게는, 전부 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