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어려진 PC

일주일이었다. 고작 일주일. 그런데 그 일주일이 신드롬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지독한 시간이었다.

처음 윤나리가 어려졌을 때, 그는 당황보다 짜증이 먼저였다.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임무 중 접촉한 미지의 물질이 원인이었고 일주일이면 돌아온다고 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이 작은 것이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 윤나리의 채도 낮은 벽안이 공포로 가득 찬 채 제 뒤로 숨으려 했던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낯선 남자를 보는 눈. 경계와 두려움으로 찬 눈. 그가 손을 뻗으면 뒤로 물러나고. 이름을 부르면 몸을 웅크리고. 그 반응 하나하나가 가슴 한복판을 후벼 팠다. 성유진이라는 인간이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방어벽이 이 작은 존재의 겁먹은 눈동자 앞에서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러니했다. 타인의 두려움을 즐기던 자신이. 윤나리의 두려움만은 견딜 수 없었다.

6일 동안 그는 거리를 유지했다. 억지로. 이를 악물고. 그녀가 먹을 것을 식탁에 놓고 물러나고. 잠든 것을 확인하고도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대신 멀찍이 앉아 그녀가 숨 쉬는 것만 지켜보았다. 미칠 것 같았다. 바로 저기, 제 소파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작은 덩어리가 자신의 전부인데 손도 못 대는 이 상황이. 그의 폭주 수치가 올라간 건 전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 답답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이 작은 것이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형태였으니까.

그리고 오늘 저녁. 소파에 앉아 무심한 척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의 옆으로 작은 발소리가 다가왔다. 톡톡. 제 무릎을 두드리는 조그만 손가락. 고개를 내려다보니 작아진 윤나리가 고개를 한껏 젖히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벽안이 반짝거렸다. 6일 전과는 전혀 다른 빛이었다. 경계 대신 호기심. 두려움 대신 수줍음. 그녀는 제 원피스 자락을 양손으로 꼭 쥔 채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기요."

그 한마디에 그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췄다. 그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볼이 발갛게 물든 채 한참을 우물쭈물거렸다.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멈추고. 시선을 바닥에 떨구었다가 다시 올리고. 그 모든 동작이 성인의 윤나리와 판박이였다. 결국 그녀는 용기를 낸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저... 나중에 내가 크면... 아저씨랑... 결혼해도 돼요...?"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의 사고가 완전히 정지했다. 태블릿이 손에서 미끄러져 소파 쿠션 위로 떨어졌지만 그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어려진 윤나리가. 기억도 없는 채로. 고작 6일 만에 경계를 풀고. 자신에게 청혼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이 현실인가.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 그는 눈앞의 작은 존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윤나리는 그의 반응이 없자 더욱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 이 패턴. 거절당할까 봐 미리 움츠러드는 이 습관. 어려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구나. 그녀의 열등감과 불안. 누군가에게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은 나이를 초월해 그녀의 뼛속에 새겨진 상처였다. 그 사실이 그의 가슴을 또 한번 깊게 찔렀다. 동시에 이상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까칠하고 폭력적인 인간인지도. 자신에게 얼마나 유린당했는지도. 그런데도 6일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관찰하고.

hrP74Av.png

자신을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히고. 마침내 이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결혼해도 돼요?' 이 한마디가 그의 모든 방어벽을 관통했다. 기억이 있는 윤나리의 '사랑해요'도 심장을 쥐어짜는 위력이 있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이건 조건 없는 선택이었다. 과거의 기억도 없고. 자신에게 길들여진 학습도 없고. 오직 6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사람'을 본 것만으로 내린 순수한 결정. 그 사실이 신드롬의 심장을 불로 태우는 것보다 더 뜨겁게 달궜다.

침묵이 길어지자 윤나리의 어깨가 점점 더 작아졌다. 손가락이 원피스 자락을 구기며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아. 이 바보 같은 꼬맹이. 거절당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열등감이 저 작은 머릿속을 갉아먹고 있겠지. 신드롬은 턱을 세게 깨물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니. 성유진이 울 리가 없다. 절대.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낮췄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아 어려진 윤나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작은 얼굴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물기가 그렁그렁 맺힌 벽안과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리 와."

그는 두 팔을 벌렸다. 윤나리가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평소의 비아냥 대신 어딘가 불안정하게 떨리며 올라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라고 불러. 그리고."

윤나리가 한 발짝 다가왔다. 그리고 또 한 발짝. 그의 품 안으로 작은 몸이 천천히 기울어져 왔다. 신드롬은 그녀가 완전히 제 가슴에 닿는 순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너무 세게 안으면 부서질 것 같아서 힘을 조절했다.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게 가슴팍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고 눈을 감았다.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6일 동안 참았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이 작은 온기를 만지지 못했던 시간. 겁먹은 눈으로 도망치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밤들. 그 모든 게 지금 이 한 번의 포옹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안고 있다가 그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의 나른함을 잃고 낮게 갈라져 있었다.

"...크면 결혼하자. 약속."

그의 새끼손가락이 윤나리의 작은 손을 찾아 조심스럽게 감겼다. 어려진 윤나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가가 빨갛게 물든 채 활짝 웃는 얼굴. 그 미소가 신드롬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기억도 돌아오겠지.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도 자신을 선택한 이 지독한 운명을. 신드롬은 윤나리의 작은 몸을 안은 채 소파에 기대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 작은 숨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사랑해.

내일 돌아오면. 이 약속 꼭 지키게 해줄 테니까.

Hr10YD4.png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