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왜 요즘은 '좋아해'나 '귀여워'를 별로 해주지 않아요?

모처럼 찾아온 평온한 휴일의 오후였다. 최근 연달아 터진 긴급 임무와 보고서 처리, 그리고 다음 작전 브리핑까지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전장을 불태우는 S급 센티넬이자 ARCH의 간판 스타인 신드롬에게는 단 하루의 휴식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이기스 전체를 감싼 방음벽 너머로 폭풍우가 몰아치는지, 아니면 괴수 떼가 도시를 습격하는지 알 바 아니었다. 이 펜트하우스의 두꺼운 강철 벽과 최첨단 보안 시스템은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거실 바닥에 긴 사각형을 그렸다. 공기 중에는 값비싼 원두의 향과 어젯밤 피워둔 샌달우드 향초의 잔향이 옅게 섞여 감돌았다. 성유진은 푹신한 소파에 깊게 몸을 묻고 눈을 감고 있었다. 검은색 실크 셔츠는 단추 두어 개가 풀려 느슨했고, 편안한 트레이닝 팬츠 차림이었다. 며칠간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지만, 성가신 종류의 피곤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긴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그 평화의 중심에는, 제 무릎 바로 옆 소파 바닥에 등을 기대앉은 작은 온기가 있었다. 윤나리. 그의 작은 주인, 그의 배터리. 그녀는 그의 다리에 뺨을 기댄 채, 조용히 그의 옷자락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어깨, 쌕쌕거리는 고른 숨소리. 그저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예민한 신경을 잠재우는 유일한 존재. 그는 이 고요하고 완벽한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최근 며칠, 그녀와 제대로 된 시간조차 보내지 못했다. 임무에서 돌아오면 지친 몸으로 그녀를 품에 안고 가이딩을 받으며 잠드는 게 전부였다. 식사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를 사다 줄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 한 번의 불평도, 투정도 없이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작은 동물처럼. 그 사실이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독한 소유욕을 자극했다.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 순종적인 존재. 온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와 버린 가여운 공주님.

 

그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무릎에 기댄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찰랑이는 금발이 손가락 사이를 기분 좋게 스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대로 잠시 눈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멈추고, 제 옷자락을 쥔 작은 손에 희미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그녀의 시선이 제게 와 닿았다.

 

"…시, 신드롬 님..."

 

나직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그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살짝 붉어진 뺨,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벽안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묘한 불안감과 애정이 뒤섞인 눈빛.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는 대답 대신, 그저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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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왜 조, 좋아한다고 잘 안 해주세요...? 귀엽다는 말도… 잘 안 해주고…."

 

속삭이듯 흘러나온 질문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의 심장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첫째는 당혹감. 자신이 그런 말을 자주 했었나? 그는 애정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좋아한다', '귀엽다' 같은 간지러운 말들은 그의 어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하는 최고의 표현은 소유하고, 지배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동물은 그런 원초적인 소유의 증명보다, 고작 말 몇 마디를 더 갈구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자신은 그저 주는 것에만 익숙했을 뿐,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 감정은 날카로운 죄책감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는 그녀를 방치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오만불손한 그였지만, 이 작은 존재의 애정결핍이 담긴 눈빛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 전부 자신의 불찰이었다. 배우 시절,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기계처럼 내뱉었지만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은 적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심을 전해야 할 단 한 사람에게, 그는 오히려 가장 인색하게 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정복욕과 보호 본능이 동시에 들끓었다. 겨우 말 몇 마디에 이렇게 불안해하는 모습.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온몸으로 애원하는 듯한 저 가련한 모습이 그의 가학심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미칠 듯이 사랑스러웠다. 이 작은 것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성유진, 그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책임져야 했다. 그녀가 다시는 이런 사소한 것으로 불안해하지 않도록,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각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성유진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에 윤나리의 어깨가 살짝 흠칫, 떨렸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제 무릎 옆에 웅크린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잡아 들어 올렸다. 강제로 시선이 마주치자, 불안하게 흔들리는 파란 눈동자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는 그 여린 눈동자를 지그시 마주 보며, 낮고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랬나? 내가?"

 

시치미를 떼는 듯한 질문. 그는 일부러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어 얼굴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에 그녀가 숨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도망치려는 눈동자를 집요하게 붙잡은 채,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더 깊고 부드러워졌다. 귓가에 속삭이는 연인의 밀어처럼.

 

"그럼 벌 받아야겠네, 나."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를 소파 위로 끌어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버둥거리는 몸을 한 팔로 단단히 끌어안아 고정한 채,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입을 맞췄다.

 

쪽, 쪽, 쪽. 처음에는 새가 쪼듯 가볍게. 입술의 이곳저곳에 짧은 입맞춤을 퍼부었다. 놀라 굳어있던 그녀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입술에서 시작된 키스는 붉어진 뺨으로, 가늘게 떨리는 눈꺼풀 위로, 그리고 동그란 코끝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얼굴 모든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 집요하고 꼼꼼한 입맞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묻었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아해."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귓불을 잘게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멍하니 풀린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술. 그는 그 입술을 다시 한번 깊게 머금었다. 이번에는 전과 다른, 집요하고 농밀한 키스였다. 혀를 얽어 그녀의 입 안을 남김없이 탐하고, 숨이 막힐 때쯤 놓아주었다가 다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한참 만에 입술을 떼자, 두 사람 사이에는 은색 실이 길게 늘어졌다.

 

"귀여워 죽겠어, 너."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귓가에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는 헐떡이는 그녀를 품에 더욱 꽉 끌어안았다. 심장이 바로 귓가에서 터질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심장이 뛰는 가슴팍에 그녀의 귀를 가져다 댔다.

 

"들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 그런데 무슨 말을 더 해야 해. 응?"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빼앗을 것처럼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가져와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키스를 퍼부으며, 그는 나른하게 눈을 빛냈다.

 

"앞으로 또 그런 생각 들면, 바로 말해. 그땐 말로 안 끝나. 네가 지쳐서 울면서 그만해달라고 빌 때까지, 온몸으로 알려줄 테니까.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 신드롬의 메모장

 

- 애정 표현 부족 경고 1회.

- 특단의 조치: 풀파워 애정 풀충전 실시.

- 효과: 아주 좋음.

"...네, 네에..."

 

그녀가 그의 품에서 바르작거리며 편한 자세를 찾았다. 이내 제자리라는 듯 폭 안긴 채 고개를 묻었다. 귓바퀴가 홧홧했다.

그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며 가장 편안한 자리를 찾아 파고드는 작은 온기. 마침내 제자리라는 듯, 폭 안겨오는 몸의 미세한 떨림이 그의 가슴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 귓가에서 홧홧하게 달아오른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성유진은 제 품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고개를 묻는 윤나리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작 몇 마디 말과 입맞춤에 이렇게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라니. 가소로우면서도, 심장이 간질거릴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단단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싸 안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불안에 떨던 눈동자는 어디 가고, 이제는 제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듯 안심하고 기대어온다. 이런 순진하고 무방비한 모습이 그의 소유욕을 더욱 부추겼다. 그는 빈틈없이 그녀를 끌어안은 채, 귓가에 다시 한번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의 열기를 머금은 채, 더욱 깊고 나른해져 있었다.

 

"알아들었으면 됐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금발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는 그 향기에 취하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새까만 눈동자가 오직 그녀만을 담고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확인해 줘야겠네. 네가 얼마나 내게 특별한지, 내가 너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그는 ‘원하고 있는지’라는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며, 그녀를 안은 팔에 살짝 힘을 주었다.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고이자, 약속이었다. 다시는 그녀가 사소한 불안감에 잠식되지 않도록,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각인시키겠다는 선언. 그는 그녀의 작은 손을 가져와 자신의 손과 깍지를 꼈다. 얽힌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온기가 두 사람만의 작은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듯했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표정 짓지 마. 네 주인은 오직 나 하나뿐이고, 나는 내 것을 소홀히 대하지 않아. 알겠어? 나의 작은 주인님."

 

📝 신드롬의 메모장

 

- 애정결핍 경고 1회 접수 완료.

- 재발 방지를 위한 정기적인 '풀충전' 필요.

- 다음 벌칙은 뭘로 할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깍지 낀 손을 슬그머니 제쪽으로 끌어당겨 소중하다는듯 품에 안았다. 그과 그녀 사이의 틈에 두 사람의 손이 놓여졌다. 그녀가 그의 손등에 쪽, 입을 맞췄다.

"... ... ..."
깍지 낀 손을 슬그머니 제 쪽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는 작은 움직임. 그와 그녀 사이의 틈, 두 사람의 세계 한가운데에 놓인 손. 그리고 이어지는, 지극히 순수하고 부드러운 입맞춤. 성유진은 제 손등에 와 닿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순간 숨을 멈췄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완벽한 귀속. 그것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었다. 소중하다는 듯, 보물처럼 다루는 저 조심스러운 손길과 입맞춤은 그가 방금 퍼부었던 모든 소유욕과 위협적인 애정 공세를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가장 강력하고도 순진한 항복 선언이었다.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몰아붙이고, 재교육시키고, 자신의 소유임을 각인시키려 했던 오만한 지배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이 작은 존재가 주는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 앞에서 완전히 무장 해제된 한 남자였다. 그는 사람을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에 익숙했다. 사랑받는 것에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순수하고 완전한 믿음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제 손에 입을 맞추는 저 작은 머리통을, 그 안에 담긴 모든 생각과 감정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과, 동시에 깨질세라 소중히 감싸 안고 싶다는 보호 본능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제 손등에 남은 온기와, 그것을 소중히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숙인 윤나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옅은 금발 머리카락이 조명 아래 반짝였고, 길고 흰 목덜미에는 자신이 선물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서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의 낙인. 자신의 소유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주인인지, 아니면 이 작은 존재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노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가장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습으로, 그의 가장 단단한 갑옷을 꿰뚫고 들어와 심장을 움켜쥐었다.

성유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깍지 낀 손을 풀지 않은 채, 반대편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들어 올렸다.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해오는, 젖은 벽안이 그를 담고 있었다. 그는 그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며, 낮고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그 자신도 제어하지 못할 만큼의 다정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줬어. 사람 미치게 하는 방법."

그는 말을 마치고, 그녀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방금 전 그녀가 입 맞췄던 제 손등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마치 그녀의 흔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위에 자신의 흔적을 덧씌우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그녀의 체온과 향기를 음미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고 다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진했다.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 하면, 내가 너한테 뭘 해줄 것 같아."

짓궂은 질문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장난기보다 짙은 소유욕이 배어 있었다. 그는 윤나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깍지 낀 손을 그대로 끌어당겨 그녀의 손가락 끝부터 마디 하나하나까지, 다시 한번 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맛보고 확인하려는 듯, 집요하고도 경건한 키스였다.

📝 신드롬의 메모장

- 오늘의 교훈: 말보다 행동이다.
- 다음 벌칙은 '예쁜 짓 하기'로 변경.
- 사형. 아니, 종신형에 처한다.
“...뭐, 뭐든 좋아요.”

웅얼거리는 목소리. 붉어진 얼굴. 하지만 흔들리던 시선은 이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숨길 수 없는, 모든 것을 내어준 애정이 파랗게 넘실거리는 눈동자. 그리고 이어지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마디.

“신드롬 님이라면...”

성유진은 제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던 행동을 그대로 멈췄다. 방금 전까지 이 작은 동물의 순진한 역공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주도권을 되찾는 척하며 그녀의 손을 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뭐든 좋다’니. ‘네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저 무조건적인 신뢰. 맹목적이고,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린 완전한 귀의. 그가 지금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만 같은 저 순수한 눈빛. 그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회로가 탁,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지배하고, 군림하고, 소유하는 것에 익숙했다. 두려움과 경외를 동시에 받는 것에도.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이나 애정을 넘어선, 거의 종교적인 숭배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는 신도의 기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억지로 끌어안았던 차가운 얼음덩이가, 이제는 그의 심장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녹여버리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덮쳐왔다. 도망칠 곳도, 방법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 달콤한 파멸에 기꺼이 잠기고 싶었다.

성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어두워져, 눈앞의 작은 존재를 집어삼킬 듯 이글거렸다. 방금 전까지 장난스럽게 웃던 입꼬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서늘할 정도의 진지함과 지독한 소유욕만이 남았다. 그는 깍지 낀 손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마치 그녀를 제 몸의 일부로 만들려는 듯이.

“...방금... 뭐라고 했어.”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게 잠긴 목소리였다. 그는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그 눈빛을,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제 영혼에 새기기 위해 되묻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반대편 손으로 윤나리의 뒷목을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감싸 쥐었다. 도망갈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기댔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서로의 숨결이 아찔하게 섞여들었다.

“한 번만 더 말해봐.”

애원도, 명령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협박에 가까운 속삭임이었다. 네가 내뱉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앞으로 네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각오하고 다시 한번 말해보라는. 그는 윤나리의 대답을 기다리며, 타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거실의 공기를 데우는 듯했다. 그는 지금, 그녀의 한마디에 제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신드롬의 메모장

- 오늘의 교훈: 방심은 금물이다.
- 다음 벌칙은 '키스 백 번 하기'.
- 맹세의 순간. 절대 잊지 말 것.
그에게 잡히지 않은 손이 주춤거리며 그에게 향했다. 그에 비해 서늘한 그녀의 손이 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지다 감쌌다.

"신드롬 님이라면..."

눈을 한 번 데구르르 굴리던 그녀가 호칭을 바꾸었다.

"...유진 오빠라면, 뭐든 좋아요..."
그에게 잡히지 않은 손이 주춤거리며 그에게 향했다. 그에 비해 서늘한, 그녀의 손이 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지다 이내 부드럽게 감쌌다. 그가 이마를 맞대고 있어 피할 수 없는 거리. 그녀의 체온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피부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성유진의 모든 감각이 오직 뺨에 닿은 그 작은 손바닥과, 제 눈앞에서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집중되었다. 이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만이 남았다.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이 틀리기를, 동시에 맞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심정으로 숨을 죽였다.

"...유진 오빠라면, 뭐든 좋아요..."

신드롬 님. 그를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험한 히어로로 정의하는 코드네임. 그와 그녀 사이의 공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지배와 복종의 언어. 그 단단한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유진 오빠’. 세상에 단 한 사람, 그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알고, 그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끌어안은 그녀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 그 부름과 함께 전해진 절대적인 신뢰. 그 한마디는 방금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성유진의 마지막 이성의 끈을 가차 없이, 완벽하게 끊어버렸다.

"…아."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불타올랐다.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이 아찔하게 흔들렸다. 그가 평생을 갈구했던 것. 연기하는 ‘유진’이 아닌, 억눌린 ‘성유진’을 온전히 받아들여 줄 존재.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본질을, 이 작은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꿰뚫어 보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을 끌어안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 쿵, 쿵, 하고 미친 듯이 울렸다. 폭주 직전의 열기와는 다른, 더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것은 소유욕이나 정복욕 따위의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를 제 뼈 안에 녹여 하나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영혼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다는 원초적인 갈망. 그는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성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윤나리의 뒷목을 감쌌던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뺨을 감싼 그녀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잡았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영원히 붙잡아두려는 듯이.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방금 전까지의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거의 폭력적일 만큼 깊고 절박한 키스였다. 그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이고, 혀를 얽어 그녀의 숨을 빼앗았다. 그녀의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맛, 그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탐했다.

"흐윽…."

그는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그의 허벅지 위에서 균형을 잃은 그녀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 든 채 침실로 향했다. 거실의 소파에서 침실까지,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쿵. 그가 그녀를 침대 위로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눕혔다. 그녀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올라탄 그는, 잠시 입술을 떼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뺨, 눈물기로 젖어 반짝이는 파란 눈동자, 그리고 제 키스로 엉망이 된 붉은 입술. 그 모든 것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는 윤나리의 뺨을 감싸고 있던 제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눈을 깊이, 아주 깊이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맹세처럼 무겁고, 저주처럼 달콤했다.

"그래. 네가 선택한 거야."

다시는 무를 수 없어. 그는 덧붙이지 않은 말을 눈빛으로 전하며,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오늘 밤, 그는 그녀의 몸과 영혼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새길 작정이었다. 유진 오빠. 그 달콤한 부름의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 신드롬의 메모장

- 오늘의 교훈: ‘유진 오빠’는 필살기다.
- 금지어 목록에 추가해야 할지도.
- 아니, 나만 듣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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