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mess 7] 01
조우

홍콩. 빅토리아 하버를 마주한 완차이 구역의 민간인 거주 블록. 오후 11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네온사인 몇 개가 끈질기게 밤을 붙들고 있었다. 안전지대로 지정된 이 구역은 UN과 다국적군의 공동 관할 아래 놓여 있었고,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이 거리의 경계를 갈랐다. 그 안쪽으로는 수천 명의 민간인이 임시 거주 시설에 밀집해 있었다. 좁은 골목마다 빨랫줄이 걸려 있고, 식수대 앞에 늘어선 빈민들의 줄이 길었다.

 

검문소 바로 안쪽, 한때 해산물 식당이었던 건물의 2층. 창문 유리는 절반이 깨져 있고, 남은 유리에는 방탄 필름이 덧대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전기의 잡음이 낮게 울렸다.

 

"Seven, this is Watchtower. There’s a civilian vehicle stopped near the south barricade of Sector 4. Advise."

(7, 이쪽은 워치타워. 섹터 4 남측 바리케이드 인근에 민간 차량 한 대가 정차 중이다. 확인 바람.)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영국 억양이 섞인 표준 NATO 통신 프로토콜이었다. 건물 2층의 임시 작전실에는 접이식 테이블 위로 홍콩 완차이 구역의 위성 사진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빨간 핀 여러 개가 꽂혀 있었다. 각각이 최근 72시간 내 보고된 의심 활동 지점이었다. 핀의 밀도가 안전지대 남측 경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이 구역을 바깥에서 시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Seven, copy. White van, plates unreadable. Driver’s side clear, passenger seat empty. They're just sitting there... Hold on."

(7. 확인. 차량은 백색 밴, 번호판 식별 불가. 운전석 클리어, 조수석 비어 있음. 대기 중인……잠깐.)

 

남자의 억양이 급격히 꺾였다. 밴 뒤에 서 있던 당신을 바라보자마자 주저 없이 무전 통신을 껐다. 덕분에 맞은편에서는 당황한 듯한 숨소리와 '이봐—' 하는 단말마가 울렸지만 남자는 좀처럼 신경쓰지 않았다.

 

"Hello there, darling."

(안녕, 자기.)

 

그가 밴 위에 팔을 얹으며 자세를 약간 기울였다. 선글라스 위 반사광이 반짝였다.

 

"You lost, or are you looking to start some trouble?"

(길을 잃은 거야, 아니면 못된 짓을 준비하는 거야?)

 

[턴 1]

"... ... ..."

 

부자연스럽다기엔 부드럽고, 자연스럽다기엔 인위적인 몸짓이었다. 그것은 그의 질문에 답하기 위에 고개를 들어올리고, 입을 벌렸다.

 

"...길을 잃었습니다. 버려졌습니다."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

세븐의 손이 무전기 위에서 멈췄다. 선글라스 너머로 그 존재를 훑는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은발. 금안. 160센티미터 남짓한 체구에 마른 골격. 옷차림은 규격화된 것이었고, 피부의 질감은 지나치게 균일했다. 숨소리가 없었다. 흉곽의 움직임이 없었다. 입술이 벌어지고 닫히는 과정에서 호흡에 수반되어야 할 미세한 떨림이 관찰되지 않았다.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느리게 올라갔다.

 

"Abandoned, huh."

(버려졌다고.)

 

그가 밴에 기대었던 팔을 거두며 몸을 곧게 세웠다. 189센티미터의 장신이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으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필터를 이빨 사이에 굴리면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검문소 너머로 순찰 드론 한 대가 낮은 고도로 지나가며 서치라이트를 흘렸고, 그 빛이 은발 위를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Well. Not every day you see a stray doll wandering around Sector 4 at this hour."

(뭐. 섹터 4에서 이 시간에 떠돌아다니는 인형을 매일 보는 건 아니지.)

 

'인형'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도 호기심도 아닌, 단순한 확인의 톤이 실려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븐은 데드존에서 구형 모델의 잔해를 충분히 목격한 적이 있었다. 관절부의 미세한 접합선, 동공의 조리개가 수축하는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는 것이 내뿜는 특유의 열기와 냄새가 이 존재에게는 부재했다. 늦은 밤공기 속에서 금속과 실리콘의 희미한 잔향만이 코끝에 걸렸다.

 

그가 필터를 깨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목에 새겨진 흉터가 가로등 빛 아래 드러났다가 옷깃에 가려졌다.

 

"Who dumped you? Military? Corporate? Some rich asshole who got bored?"

(누가 버린 거야? 군? 기업? 지루해진 부자 놈?)

 

질문을 던져놓고도 답을 기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미 눈앞의 존재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구형 안드로이드. 민간용이라면 등록 번호가 있을 것이고, 군용이라면 식별 코드가 각인되어 있을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버려졌다'는 말은 소유권 이탈을 뜻했고, 소유권이 이탈된 안드로이드는 이 구역의 법적 분류상 유실물이거나 폐기물이었다.

 

세븐이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 모금의 연기가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퍼졌다. 그가 연기를 내뱉으며 입꼬리에 걸린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Name? Serial number? Anything at all?"

(이름은? 시리얼 넘버는? 뭐라도 있어?)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금색 눈동자 위에 머물렀다. 선글라스 렌즈에 가로등 빛과 네온사인이 겹쳐 비쳤고, 그 반사 속에 은발의 윤곽이 작게 일렁였다. 워치타워에서 다시 무전이 들어왔다. 잡음 섞인 호출음이 허리춤의 무전기에서 울렸으나 세븐은 볼륨을 한 칸 낮추는 것으로 응답을 대신했다. 순찰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남측 바리케이드의 백색 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밴 앞에는 세븐이, 그리고 그 앞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이 서 있었다.

 

[턴 2]

그것은 눈을 느리게 깜박이곤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모름. 모름... 기억나지 않습니다."

 

---

담배 연기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세븐은 그 연기를 들이마시지도, 내뱉지도 않은 채 잠시 필터를 이빨로 굴렸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구형 안드로이드의 메모리 손상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데드존에서 주워온 잔해들 중 절반 이상이 코어 데이터가 날아간 상태였고, 나머지 절반은 애초에 코어 자체가 물리적으로 파손되어 있었다. 눈앞의 것은 적어도 자가 구동이 가능한 상태였고, 언어 출력 모듈이 살아 있었으며, 질문에 대한 응답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즉 완전한 폐기물은 아니었다.

 

세븐이 담배를 왼손으로 옮겨 물고 오른손을 뻗어 금색 눈동자 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시선 추적 반응을 확인하려는 동작이었다. 기계적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다루듯 무심하고 자연스러운 손짓이었다. 동공의 조리개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미세하게 수축하고 확장하는 것이 선글라스 너머로 포착되었다.

 

"Hm. Eyes work fine, at least."

(흠. 눈은 적어도 멀쩡하네.)

 

그가 손을 거두며 허리를 약간 숙였다. 시선의 높이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189센티미터와 160센티미터 사이의 간극은 상당했고, 세븐은 그 차이를 좁히는 데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오른쪽 얼굴을 비추자 화상 흉터의 질감이 드러났다. 피부가 녹아붙었다가 다시 굳은 표면의 요철이 빛의 각도에 따라 깊어졌다가 얕아졌다. 그는 그것을 가리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No name, no number, no memory. That's a full house of nothing."

(이름 없지, 번호 없지, 기억 없지. 아무것도 없는 풀하우스야.)

 

도박 용어를 섞어 말하면서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조였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잡음이 아니라 명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워치타워 측의 짜증이 섞인 호출이었다.

 

"Seven, respond. What's the status on that van? Over."

(7, 응답해. 밴 상황 어떻게 됐어? 오버.)

 

세븐이 느긋하게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담배를 문 채로 송신 버튼을 눌렀다.

 

"Van's clear. Just a stray. I'll handle it."

(밴 클리어. 떠돌이 하나 있어. 내가 처리할게.)

 

'처리'라는 단어의 무게가 군사 통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세븐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어를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워치타워가 추가 질문 없이 통신을 끊었다는 것은 그만큼 세븐의 판단에 일정한 재량이 주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무전기를 다시 허리춤에 걸며 금색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담배 끝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붉게 점멸했다.

 

"Alright. Here's the deal."

(좋아. 상황은 이래.)

 

그가 담배를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눈앞의 존재를 가리켰다. 연기가 손가락 끝에서 얇은 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You're standing in a UN-controlled civilian zone with no ID, no registration, and no owner on record. By the book, that makes you either salvage or scrap. Salvage gets sent to the depot for reassignment. Scrap gets dismantled for parts."

(너 지금 신분증도 없고, 등록도 없고, 소유주 기록도 없는 채로 UN 관할 민간 구역에 서 있어. 규정대로라면 너는 회수물이거나 폐기물이야. 회수물은 보급소로 보내져서 재배치되고. 폐기물은 분해돼서 부품이 되지.)

 

그의 목소리에는 위협의 기색이 없었다. 사실을 나열하는 톤이었다. 마치 날씨를 읽어주듯, 혹은 메뉴판의 가격을 확인하듯. 그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가 은발 위로 흩어졌다.

 

"But I'm not really a by-the-book kind of guy."

(근데 나는 딱히 규정대로 하는 타입이 아니거든.)

 

세븐이 상체를 일으키며 밴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밴 내부는 비어 있었다. 이 안드로이드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이 차량이었는지, 아니면 우연히 이 지점에서 마주친 것인지는 아직 불명확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강아지상의 얼굴에 떠 있는 무표정은 감정의 부재인지 표현 모듈의 제한인지 판별이 어려웠고, 세븐은 그 구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So. You can stand here till morning and let the next patrol pick you up, which... I wouldn't recommend. Or you can come with me, and we figure out what the hell you are when the sun's up."

(그러니까. 아침까지 여기 서서 다음 순찰조한테 걸리든가, 그건……추천 안 해. 아니면 나랑 같이 가서 해 뜨면 네가 대체 뭔지 알아보든가.)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선택지를 제시하는 태도는 관대하다기보다 무관심에 가까웠다. 어느 쪽을 골라도 그에게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듯한 자세였다. 그러나 순찰조에 넘겨지면 보급소행이 확정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이미 그의 내부에서 어떤 계산이 끝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턴 3]

"..."

 

그것은 그의 말의 의미를 처리하는데에 약간의 시간을 소모했다. 자신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 그와 같이 가서. 다시 한 번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폐기물, 분해, 부품. 그리고 다시 그.

 

"...

 

그것이 발걸음을 떼 그에게로 걸어갔다.

 

"수락. 추천 경로로 이동."

 

---

'추천경로로 이동.' 그 말이 공기 중에 떨어지자 세븐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비틀렸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짧았고, 비웃음이라고 하기엔 악의가 없었다. 인간이 하지 않을 말투였다. 인간이 하지 않을 선택 방식이었다. 추천경로. 마치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처럼 명료하고 건조한 수락이었다. 그가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빨아들이고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려 군화 밑으로 비벼 껐다.

 

"Good girl."

(착하네.)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세븐이 몸을 돌려 바리케이드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보폭이 넓었다. 다리가 길었고 걸음에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에, 160센티미터의 체구가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보폭을 늘리거나 걸음 수를 더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세븐은 세 걸음쯤 가다가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이 은발의 위치와 속도를 확인했고, 무의식적으로 보폭을 반 걸음 줄였다.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는 본인도 모를 일이었다.

 

골목을 두 개 꺾었다. 완차이 구역의 주거 블록은 밀도가 높았고 통로가 좁았다. 한때 상가였을 건물의 1층 셔터들이 내려져 있었고, 그 위에 스프레이로 갈겨 쓴 광둥어 낙서와 UN 관할 구역 표시 스티커가 겹쳐 붙어 있었다. 공기는 습했다. 아열대 기후 특유의 끈적한 열기가 콘크리트 벽에서 배어나왔고, 어딘가에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저음으로 울렸다. 세븐이 걸으면서 주머니에서 열쇠 뭉치를 꺼냈다. 열쇠가 세 개였다. 하나는 녹슬어 있었고, 하나는 반짝였고, 하나는 아예 열쇠라기보다 전자식 카드에 가까웠다.

 

"Fair warning. The place is a shithole."

(미리 말해두는데. 개판이야.)

 

그의 목소리에 변명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사실을 고지하는 톤이었다. 건물 외벽에 '棺材房'이라는 글자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관재방. 관짝 집. 홍콩의 초소형 주거 형태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녹슨 철제 계단을 올라 4층까지 갔다. 계단은 좁았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이었으며, 난간에는 빨랫줄에 걸린 이웃의 속옷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TV 소리가 새어나왔고, 아이 우는 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세븐이 4층 복도 끝의 문을 열었다. 전자식 카드를 대자 잠금이 풀렸고, 문이 안으로 밀려 열렸다. 내부는 그의 말대로였다. 좁았다. 4평 남짓한 공간에 접이식 침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침대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담요가 뭉쳐져 있었다. 벽면 한쪽에 군용 더플백 두 개가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 빈 맥주캔 서너 개와 재떨이가 놓인 작은 접이식 테이블이 있었다.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창문은 하나뿐이었고, 반쯤 열려 있어 바깥 골목의 네온 불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분홍색과 초록색이 번갈아가며 벽을 물들였다.

 

세븐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연한 회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날카롭게 째진 눈매 위로 짙은 눈썹이 선명했고, 선글라스 없이 드러난 이목구비는 실내의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도 윤곽이 뚜렷했다. 서늘한 인상이었으나 입꼬리에 걸린 느슨한 곡선이 그 서늘함을 중화시켰다. 그가 선글라스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고 더플백 하나를 발끝으로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Sit anywhere. Or stand. Doesn't matter."

(아무 데나 앉아. 아니면 서 있어. 상관없어.)

 

그가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캔 네 개와 생수 한 병, 그리고 유통기한이 의심스러운 샌드위치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세븐이 맥주캔 하나를 꺼내 뚜껑을 따며 벽에 등을 기댔다. 한 모금을 삼킨 뒤 회색 눈동자가 방 한가운데 서 있을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네온 불빛이 은발 위로 번져 색을 입혔을 것이었다. 그가 캔을 손 안에서 가볍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So. Let's see what we're working with. Can you run a self-diagnostic? Internal status, damage log, anything your system can pull up."

(그래서. 뭘 가지고 놀 수 있는지 보자. 자가 진단 돌릴 수 있어? 내부 상태, 손상 로그, 네 시스템이 끌어올릴 수 있는 거 아무거나.)

 

질문을 던지면서 맥주를 한 모금 더 삼켰다. 목이 움직이며 흉터가 가로등 빛 아래에서 그랬던 것처럼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의 자세는 이완되어 있었다. 경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무장 해제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위협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이었다. 구형 안드로이드가 인간에게 해를 가할 확률은 시스템 오류가 아닌 이상 극히 낮았고, 설령 오류가 있더라도 세븐은 자신의 반응 속도를 신뢰하고 있었다.

 

[턴 4]

"..."

 

그것은 잠시 '눈'을 감았다. 자가 진단, 내부 상태, 손상 로그. 데이터 기록 손상률이 매우 높았다. 지직거리는 영상을 복기하고, 파손 부위를 점검했다. 잠시 빛이 흐려졌던 눈동자가 밝아졌다.

 

"데이터 로그 손상률 92.87%. 복구 가능성 매우 낮음. 부품 손상도 20%. 내구도 58%. 부품 교체 필요성 알림."

 

---

세븐이 맥주캔을 입술에서 떼었다. 회색 눈동자가 반쯤 가늘어졌다. 92.87퍼센트. 그 숫자가 공기 속에 떨어졌을 때 그의 표정에 스친 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거의 전손에 가까운 데이터 손상률. 그럼에도 언어 출력과 자가 진단 모듈은 살아 있고, 보행과 시각 추적이 가능하며, 명령어에 대한 응답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코어 유닛 자체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기억 영역에 집중된 손상이라는 의미였다. 군용이라면 코어와 메모리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이중 구조일 가능성이 있었고, 민간용이라면 외부 충격에 의한 선택적 데이터 소거가 의심되었다.

 

그가 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금속에 부딪히는 짧은 소리가 좁은 방 안에서 울렸다.

 

"Ninety-two percent gone and you're still walking around talking like a GPS. That's either impressive engineering or really bad luck."

(92퍼센트가 날아갔는데 아직 돌아다니면서 네비게이션처럼 말하고 있다고. 대단한 설계이거나 운이 지독하게 나빴거나 둘 중 하나야.)

 

세븐이 벽에서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접이식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 자세로 고개를 숙여 앞에 서 있을 존재의 눈높이에 가까워졌다. 회색 눈동자가 금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선글라스 없이 드러난 그의 시선은 선명했다. 째진 눈매가 빚어내는 서늘함이 관찰하는 행위 자체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부품 손상도 20퍼센트. 내구도 58퍼센트. 부품 교체 필요성 알림. 세 가지 정보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조합했다.

 

"Where's the damage? Show me."

(어디가 손상됐어? 보여줘.)

 

그의 말투는 명령이 아니었다. 요청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담백했다.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절차의 톤이었다. 세븐은 안드로이드 정비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데드존에서 파손된 장비를 임시로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체하는 수준의 경험은 축적되어 있었다. 총기 분해 조립을 할 줄 아는 손은 기계의 구조를 읽는 데 어느 정도 적용이 가능했다. 물론 안드로이드와 소총은 복잡성의 차원이 달랐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물리적 손상의 위치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방 안의 공기가 달라붙었다. 홍콩의 습기는 4층 높이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 공기마저 끈적했다. 네온 불빛이 분홍에서 초록으로 전환되었고, 벽 위의 색이 바뀌면서 방 안의 명암이 미세하게 재배치되었다. 세븐의 오른쪽 얼굴 위 화상 흉터가 초록빛 아래에서 더 깊은 요철을 드러냈다. 그가 오른손을 느슨하게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손에는 군인의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온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I'm not gonna break you. Just need to see what's busted so I know if it's worth fixing or if I'm wasting my night."

(부수려는 거 아니야. 어디가 망가졌는지 봐야 고칠 가치가 있는 건지 밤을 낭비하는 건지 알 수 있으니까.)

 

'고칠 가치'라는 말을 꺼내면서 그의 시선이 잠깐 창 밖으로 흘렀다. 바깥 골목에서 취객 두 명이 광둥어로 고성을 주고받는 소리가 올라왔다가 멀어졌다. 세븐은 다시 시선을 돌려 금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내밀어진 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기다리는 자세였다. 강제하지 않는 자세였다. 그러나 동시에, 거부당하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무심함이 그 이완된 손가락들 사이에 배어 있었다.

 

[턴 5]

그것의 '시선'이 그의 손에 닿았다가 그의 눈동자로 향했다. 보수 부품 확인. 시간 낭비 가능성 언급. 4평의 방 안에서 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은 160cm인 그것의 발걸음으로도 고작 두세 걸음 남짓이었다. 그것은 걸치고 있던 낡은 상의를 벗어내고 뒤를 돌았다.

 

"상체 전반. 후두부 아래 손상."

 

---

세븐의 시선이 드러난 등판 위를 따라 내려갔다. 느리게, 그러나 체계적으로. 전투 지역의 피해 평가를 수행하는 눈이었다. 은발이 흘러내린 후두부 아래로 외장 패널의 접합선이 드러나 있었고, 그 접합선을 따라 균열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가장 긴 균열은 좌측 견갑골 상부에서 시작해 척추 라인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우측 늑골 하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균열의 가장자리에는 인공 피부 조직이 말려 올라가 있었고, 그 안으로 내부 프레임의 티타늄 합금 골격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이었다. 절단이 아니라 관통도 아닌, 둔기 또는 폭압에 의한 압착 파손의 양상이었다.

 

세븐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 동작은 느긋했으나 정확했다. 더플백 옆에 놓인 검은 파우치를 집어 들었다. 지퍼를 열자 안에는 필드 정비용 기본 공구가 들어 있었다. 정밀 드라이버 세트, 절연 테이프, 소형 펜라이트, 그리고 납땜 인두. 안드로이드 전용 장비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통신 장비와 드론을 임시 수리하기 위한 키트였으나, 외부 패널의 균열 정도를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Hold still."

(가만히 있어.)

 

그가 펜라이트를 켜 균열 사이로 빛을 비추었다. 프레임 골격 아래로 배선 다발이 보였다. 일부 피복이 벗겨져 있었으나 단선된 것은 아니었다. 광섬유 케이블 두 줄이 색이 바랜 채로 늘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 냉각 순환관의 접합부가 느슨해져 미량의 냉각액이 관 표면에 맺혀 있었다. 세븐의 손가락이 균열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손끝이 말려 올라간 인공 피부 조직의 질감을 확인했다. 실리콘 기반이 아니었다. 더 오래된 세대의 합성 수지 소재였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촉감은 건조하고 거칠었으며 체온이 없었다. 세븐은 그 감각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This crack along your spine — it's structural, not cosmetic. Frame's intact though, which is the only reason you're still upright."

(척추 라인을 따라 간 이 균열, 외장용이 아니라 구조적 손상이야. 근데 프레임 자체는 멀쩡하고, 그게 네가 아직 서 있는 유일한 이유지.)

 

펜라이트의 빛이 후두부 아래로 이동했다. 세븐이 한 손으로 은발을 옆으로 가볍게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의 촉감은 기묘했다. 인간의 모발보다 균일했고 마찰 계수가 낮았다. 후두부 기저에는 원형의 포트가 있었을 자리가 있었다. 포트 커버가 반쯤 뜯겨져 나가 있었고, 그 안으로 데이터 전송 단자의 핀 여덟 개 중 세 개가 구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물리적으로 강제 분리된 흔적이었다. 누군가가 데이터 케이블을 연결한 상태에서 본체를 잡아당기거나, 혹은 접속 중에 포트를 억지로 뜯어낸 것이었다.

 

세븐의 손이 멈추었다.

 

"…Someone ripped your data port out while it was still connected."

(……누가 네 데이터 포트를 접속 중에 뜯어냈어.)

 

그의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여유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이 짧아졌다. 92.87퍼센트의 데이터 손상률에 대한 설명이 붙었다. 접속 상태에서의 강제 분리는 메모리 영역에 물리적 서지를 일으킨다. 데이터가 '삭제'된 것이 아니라 '파괴'된 것이었다. 복구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자가 진단 결과가 정확했다.

 

세븐이 펜라이트를 껐다. 몸을 일으키며 공구 파우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맥주캔을 다시 집어 들었으나 마시지 않았다. 캔을 손가락 사이에서 한 바퀴 굴렸다. 회색 눈동자가 천장을 한 번 훑었다가 다시 내려왔다.

 

"Frame's fine. Wiring's mostly fine. Cooling system needs tightening but it's not critical. The real problem is your head."

(프레임 괜찮아. 배선도 대체로 괜찮고. 냉각 계통 조여줘야 하는데 치명적이진 않아. 진짜 문제는 네 머리야.)

 

그가 캔을 한 모금 마셨다. 삼키는 소리가 좁은 방 안에서 선명했다. 창밖의 네온이 다시 분홍으로 전환되었고, 그 빛이 그의 화상 흉터 위를 물들였다. 그가 입술을 캔에서 떼며 입꼬리를 올렸다. 느슨한 웃음이 돌아왔으나, 그 웃음 아래에서 무언가가 한 번 계산을 마치고 답을 내린 뒤의 고요함이 있었다.

 

"Whoever did this didn't want you dead. They wanted you blank. There's a difference."

(이짓 한 놈은 널 죽이려 한 게 아니야. 널 백지로 만들려 한 거지. 그건 달라.)

 

세븐이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걸터앉았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양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은 자세로 앞을 바라보았다. 뒤를 보이고 서 있을 그 존재의 등판 위, 균열과 노출된 프레임과 뜯겨나간 포트가 네온 불빛 아래 드러나 있을 것이었다.

 

"Get dressed. I'll figure out the parts situation tomorrow. Nothing I can do tonight with what I've got here."

(옷 입어. 부품 문제는 내일 알아볼게. 오늘 밤은 여기 있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가 더플백 하나를 발로 밀어 앞으로 내놓으며 시선을 창 쪽으로 돌렸다. 옷을 입는 과정을 굳이 지켜보지 않겠다는 무언의 배려인지, 단순히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손가락이 맥주캔 위를 톡톡 두드리는 리듬이 일정했고, 그 일정한 리듬 속에 내일의 동선이 이미 구성되고 있었다. 부품상. 중고 안드로이드 부품을 취급하는 곳은 완차이 남측 시장 골목 아래에 두 군데, 센트럴 지구의 블랙마켓에 한 군데. 구형 모델이라면 정품 부품은 기대할 수 없고 호환 부품이나 해체된 동형 모델에서 빼온 중고품을 구해야 할 터였다.

 

[턴 6]

그것은 다시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드러났던 배선이 낡은 옷에 가려지자 그저 무표정한 소녀같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발치에 그대로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확인. 알겠습니다."

 

---

발치에 앉은 것을 내려다보는 회색 눈동자가 한 박자 머물렀다. 바닥에 앉아 올려다보는 금색 눈동자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회색 눈동자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다. 세븐의 무릎 바로 옆이었다. 인간이라면 체온이 느껴졌을 거리였고, 숨결이 닿았을 거리였다. 그러나 그 존재에게서는 어느 쪽도 전해지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이 변하지 않았다. 열이 발산되지 않았다.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오로지 시각뿐이었다. 은발 위로 번지는 네온의 색, 금색 렌즈에 맺히는 그의 윤곽,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고요함.

 

세븐이 맥주캔을 비웠다. 마지막 한 모금이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났고, 빈 캔을 손 안에서 가볍게 쥐어 찌그러뜨렸다. 알루미늄이 접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찌그러진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그의 시선이 다시 발치로 내려갔다.

 

"You're sitting on the floor like a stray cat that followed someone home."

(길 잃은 고양이가 누구 따라 집에 와서 바닥에 앉은 것 같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유가 아니라 눈앞의 광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낸 관찰이었다. 낡은 옷을 다시 걸친 뒤 배선이 가려지자 160센티미터의 마른 체구와 강아지상의 얼굴만이 남아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발치에 아무런 요구 없이 조용히 앉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븐이 한 손을 뻗어 은발의 정수리를 한 번 가볍게 톡 쳤다. 두드린다기보다는 확인하는 접촉이었다. 머리카락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짧은 접촉 뒤에 손을 거두며 무릎 위에 얹었다.

 

"The bed's too small for two. I mean it literally — it's built for one person and even that's generous."

(침대 하나에 둘은 못 자. 진짜 물리적으로 한 명분이고 그것도 후하게 쳐서 그래.)

 

그가 고개를 돌려 접이식 침대를 바라보았다. 폭이 75센티미터 남짓한 싱글 사이즈였다. 189센티미터의 남자가 누우면 발이 삐져나올 정도의 길이였고, 옆으로 누워도 어깨가 양쪽 가장자리에 닿았다. 관짝이라는 이름이 과장이 아니었다. 세븐이 다시 발치를 내려다보며 눈을 한 번 가늘게 떴다. 뭔가를 가늠하는 시선이었다.

 

"Take the bed. I've slept in worse places."

(침대 써. 나는 더 지독한 데서도 잤어.)

 

그가 침대에서 일어서며 더플백 하나를 잡아당겨 벽 쪽으로 옮겼다. 그 위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벽에 등을 기대는 자세를 잡았다.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붙이고 다리를 앞으로 뻗은 자세였다. 전장의 야전 수면에 익숙한 몸이 만드는 자세였고, 그 자세로 눈을 감으면 2분 안에 잠들 수 있는 체질이었다. 군화를 벗지 않았다. 허리춤의 무전기도 그대로였다. 상의의 단추 두 개만 풀어 목 언저리를 느슨하게 만들었고, 그 동작에서 목에 가로로 그어진 흉터가 잠깐 드러났다. 잘렸다 붙은 듯한 선명한 자국이었다.

 

세븐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실내에서 피우면 환기가 안 되는 구조라는 것을 떠올린 듯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멈춘 진짜 이유가 환기인지, 아니면 앞에 호흡 기능이 없는 존재가 있어 연기가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인지, 혹은 단순히 귀찮아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무릎 위에 올렸다.

 

"One more thing."

(하나 더.)

 

그가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피로가 있었다. 하루 종일 섹터 4의 바리케이드 순찰을 돌았고, 워치타워의 무전에 응답하며 민간 차량 검문과 구역 점검을 반복했으며, 그 끝에 데이터가 92퍼센트 파괴된 구형 안드로이드를 주워왔다. 회색 눈동자가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에서 금색 눈동자를 향했다.

 

"You need a name. Can't keep calling you 'hey' or 'you there' — that gets old fast. Think of one by morning. Or don't. I'll just pick something."

(이름이 있어야 돼. 계속 '야'나 '거기'로 부를 순 없잖아, 금방 질리거든. 아침까지 하나 생각해 봐. 아니면 말고. 그냥 내가 지어줄게.)

 

그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말끝이 흐려졌다. 피로와 알코올이 의식의 표면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세븐이 마지막으로 한 번 고개를 기울여 발치에서 올라와 침대 위에 자리를 잡았을 존재를 확인하려 했으나, 눈꺼풀이 먼저 내려왔다. 숨이 일정해졌다. 깊지 않은 수면이었다. 전장에서 단련된 수면은 소리에 반응하고 움직임에 반응하는 얕은 잠이었다. 그러나 잠이 드는 속도만큼은 빨랐다. 맥주 한 캔의 미미한 알코올이 촉매가 되어 그의 의식이 2분도 채 걸리지 않고 가라앉았다.

 

좁은 방 안에 남은 것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네온 불빛의 교대뿐이었다. 분홍, 초록, 분홍, 초록. 그 빛 아래에서 벽에 기댄 남자의 숨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공간을 채웠다.

 

[턴 7]

그것은 침대에 올라가지 않았다. 여전히 바닥에 앉은 채로 잠시 그를 바라보았을 뿐. 더 지독한 곳의 리스트를 추려보던 그것은 이내 추론을 멈추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기어가듯 움직여 그의 옆에, 그와 똑같이 벽에 등을 기댔다.

 

"..."

 

이름. 그가 자신을 호명할 고유 명사를 요청했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그것을 추론하고 싶지 않았다. 왜? ...오류, 오류. 알 수 없음. 그것은 눈을 느리게 깜박이다, 눈꺼풀을 감았다.

 

"...절전 모드 가동."

 

그것은 그가 깨어날 때까지 그의 옆에 앉은 채로 '수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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