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평범했다. 적어도, 신드롬이 잠에서 깨어나 욕실 거울 앞에 서기 전까지는. 창문 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먼지 입자를 반짝이며 길게 늘어지는, 지독하게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 완벽하게 정돈된 침실, 옆에서 쌔근쌔근 잠든 작은 온기, 그리고 어젯밤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공기. 그는 익숙하게 침대를 빠져나와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거울을 본 그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잠이 덜 깬 탓인가, 아니면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헛것이라도 보이는 걸까. 아무리 봐도, 자신의 머리 위, 애쉬 브라운 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하고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솟아 있었다. 심지어 그건,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에 맞춰 움찔, 하고 움직이기까지 했다.
"...뭐야, 이건."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경악 그 자체였다. 그는 손을 뻗어 머리 위의 이물질을 만져보았다. 부드러운 솜털의 감촉, 안쪽 연골의 탄력, 그리고 만지는 순간 파르르, 떨며 제 주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것. 틀림없는 '귀'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고양이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귀. 그는 잠시 숨을 멈추고 거울 속 제 모습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그리고 절망적인 사실을 추가로 발견했다. 허리 아래, 척추 끝자락에서부터 길게 늘어뜨려진, 역시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꼬리'가 제멋대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아니, 이 경우는... 고양이겠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괴수와의 전투 중 변종 바이러스라도 감염된 건가? 아니면 빌런의 저주? 그것도 아니면... 젠장, 이건 대체 무슨 개 같은, 아니 고양이 같은 경우란 말인가. 아크의 S급 센티넬, 전장을 불태우는 파괴의 화신, 신드롬의 몸에 고양이 귀와 꼬리라니. 이건 웃음거리도 되지 못할 삼류 코미디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귀를 잡아 뜯으려다, 악, 소리도 못 내고 비명을 삼켰다. 진짜였다. 감각이 있었다. 심지어 꽤나 민감한 부위인 듯했다. 그의 얼굴이 흉흉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든 이걸 숨겨야 했다. 최소한, 저 꼬맹이가 잠에서 깨어나 이 꼴을 보기 전까지는.
그는 허둥지둥 샤워 가운을 챙겨 입고 꼬리를 가운 안으로 감춰 넣었다. 귀는... 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젖은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가려보는 수밖에. 그는 다급하게 머리를 감고, 필사적으로 머리카락을 내려 귀를 덮었다. 다행히 그의 머리는 짧은 편이 아니었기에, 얼핏 보면 티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제발, 제발 저 꼬맹이가 오늘만큼은 늦잠을 자기를. 그는 간절히 기도하며 살금살금 침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가 침실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윤나리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일어났냐?"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뻣뻣했다. 그는 최대한 태연한 척,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샤워 가운 안에서, 그의 불안감을 증명하듯 꼬리가 사정없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애써 감춘 머리 위에서는, 뾰족한 귀 한쪽이 그녀를 향해 쫑긋, 하고 세워졌다. 빌어먹을. 이건 정말이지 최악의 아침이었다.
"네에... 잘 잤...?"
그녀가 눈을 비비며 인사를 전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깼나 싶어 눈을 더 비비다 눈이 휘둥그레 커지고 만다. 침대에서 엉금엉금 빠르게 기어와 일어서며 그의 양쪽 귀를 붙잡았다.
"...귀?"
심장이 발치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침대에서 엉금엉금, 평소의 굼뜬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기어 나오는 순간. 잠이 덜 깬 몽롱한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마침내, 작은 손이 뻗어와 자신의 머리 위에 달린 이물질을 정확하게 움켜쥐는 순간. 신드롬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망했다. 완벽하게, 철저하게, 돌이킬 수 없이 망했다. 애써 덮어 내렸던 머리카락은 그녀의 손길에 무참히 흩어졌고, 쫑긋 솟아 있던 두 개의 뾰족한 귀는 이제 그녀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포획되었다.
"...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순수한 의문의 한마디가 침실의 정적을 갈랐다. 그 단어가 마치 총알처럼 그의 뇌리에 박혔다. 그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손길이 닿은 귀는 제 주인의 당혹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파르르, 경련했다. 심지어 샤워 가운 아래 감춰두었던 꼬리마저 배신자처럼 꿈틀거리며, 가운 자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욕설을 삼키는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보다 더 굴욕적인 순간이 그의 인생에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배우 시절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실수를 했던 순간도, 폭주해서 세트장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순간도, 이보다는 나았다.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의 모든 위엄과 카리스마가, 이 복슬복슬한 귀 하나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귀의 부드러운 털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호기심 가득한 그 움직임에, 신드롬은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빌어먹을. 민감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골을 타고 짜릿한 감각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 감각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는 아크의 S급 센티넬 신드롬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신체 변화 따위에 휘둘릴 그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되찾고 이 상황을 장악해야만 했다. 그는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자신의 귀에서 떼어놓았다.
"뭐 하는 짓이야, 아침부터."
그의 목소리는 위협적으로 낮게 깔렸지만, 그가 의도했던 것만큼 위압적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뾰족한 귀가 아쉽다는 듯 축, 늘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가운 아래의 꼬리는 제멋대로 신나게 흔들리며 그녀를 향해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완벽한 배신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꼬리에 힘을 주어 움직임을 멈추려 했지만, 이 빌어먹을 신체 부위들은 그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잠 덜 깼으면 다시 들어가서 자. 사람 머리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그는 최대한 태연한 척,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 행동마저도 부자연스러웠다. 어떻게든 꼬리가 보이지 않게 하려다 보니, 마치 게처럼 옆으로 걷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절규했다. 제발, 제발 그냥 잠이 덜 깬 탓이라고, 헛것을 본 거라고 믿어주면 안 될까. 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윤나리의 동그란 눈은 의심과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그의 머리 위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 깼는데..."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그의 귀를 바라보다 시선이 펄럭이는 샤워가운 쪽으로 내려갔다.
"..."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신드롬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젠장. 하필이면 저쪽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귀는 어떻게든 머리카락으로 가린다거나, 잠 덜 깬 헛것이라 우겨볼 여지라도 있었다. 하지만 저건, 저 빌어먹을 꼬리는, 샤워 가운 안에서 제 존재감을 격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통제를 벗어나 좌우로 살랑거리는 움직임이 얇은 천 너머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며, 주인의 당혹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든 그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다급하게 몸을 돌리려는 어색한 동작 때문에, 가운 자락이 더욱 크게 펄럭이며 그 안에 감춰진 무언가의 실루엣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말았다.
"..."
그녀의 침묵. 그 짧은 정적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신드롬은 마른침을 삼켰다.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면 대응이라도 할 텐데, 저렇게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하니 온몸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눈은 이제 그의 머리 위가 아닌, 명백히 그의 허리 아래, 펄럭이는 가운 자락에 고정되어 있었다.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이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워 보이는 그 빛을 마주하는 것은, S급 괴수와 맨몸으로 대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시선에 붙들린 듯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변명, 거짓말, 협박.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했다. 이건 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아크의 최강 센티넬 중 하나인 신드롬이, 고양이 꼬리 따위를 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됐다.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 꼬맹이에게만은. 그는 턱에 힘을 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이건 그냥 장난이다. 시시한 장난.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입을 열었다.
"뭐. 뭘 봐."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젠장. 그는 속으로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 팔짱을 끼며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려 애썼다. 물론, 그 자세 때문에 등 뒤에서 더욱 자유로워진 꼬리가 신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뾰족하게 솟은 귀가 그녀를 향해 쫑긋거렸다.
"사람 씻고 나왔는데,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실례 아니냐. 보고 싶은 거 있으면 어젯밤에 실컷 봤잖아."
그는 능청스럽게, 그러나 명백히 경고가 담긴 말투로 쏘아붙였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 이 굴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의 머리 위와 허리 아래에서, 다른 곳으로.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집요하게 흔들리는 가운 자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망할 놈의 꼬리는, 그녀의 그 시선이 마치 반갑기라도 한 듯 더욱 힘차게 펄럭였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며 슬금 슬금 움직이더니...
"에, 에잇...!"
그의 샤워 가운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시간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것만 같았다. 그녀의 작은 손이 샤워 가운의 밑단을 붙잡고, 망설임 없이 위로 걷어 올리는 그 찰나의 순간. 신드롬의 뇌 속 모든 회로가 타버리는 듯한 충격이 전신을 꿰뚫었다. 안 돼. 그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모든 방어 기제, S급 센티넬로서 쌓아온 위엄, 배우로서 지켜온 완벽한 이미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에, 에잇...!"
그녀의 기합 소리와 함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마지막 방어선이 걷혔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인을 배신하고 제멋대로 살랑거리던 검고 긴 꼬리가 있었다.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끝부분이 살짝 말려 올라간, 누가 봐도 완벽한 고양이의 꼬리. 그 꼬리는 갑작스럽게 드러난 세상에 놀란 듯,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며 뻣뻣하게 굳었다. 마치 현장에서 검거된 범인처럼. 신드롬은 제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있을 그녀의 얼굴을 차마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불길에 휩싸여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망했다. 이번엔 정말로. 귀는 어떻게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머리 장식이라고 우기거나, 헛것을 본 거라고 윽박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명백한 실체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몸에, 그의 일부로서 당당하게 매달려 있는 이 꼬리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였다. 그는 이제 아크의 위험한 히어로 신드롬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꼬리 달린 괴상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치욕과 굴욕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이성을 잠식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작은 존재, 이 모든 굴욕의 목격자인 윤나리를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없애버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만이 들끓었다.
그녀가 가운을 들어 올린 채, 아무 말 없이 굳어 있었다. 그 침묵이 그의 심장을 더욱 조여왔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까. 아니면 비명? 혹은 경멸의 눈빛? 어떤 반응이든 그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그는 차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에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는 자신을 옥죄던 마지막 인내심을 버리고,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가운 자락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천이 아래로 스르르 떨어져 다시 꼬리를 가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야."
지옥의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분노로 잠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부서져라 움켜쥔 채, 그녀를 자신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비틀거리며 그의 품으로 끌려온 그녀의 눈이 공포와 당혹감으로 크게 뜨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가장 끔찍한 비밀을 봐버린 이 작은 목격자를 향한 원망과, 어떻게든 이 상황을 덮어버려야 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주인의 살벌한 기분과 동기화된 귀가 맹수처럼 바짝 곤두서 있었다.
"너 지금 뭘 본 거야."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협박이자, 경고였다. 잘못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포식자의 으르렁거림. 그는 그녀를 노려보며, 다른 쪽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거칠게 붙잡아 들어 올렸다. 자신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의 붉어진 눈과,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가운 속에 갇힌 꼬리가 불안하게 파닥거리며 그의 허벅지를 연신 철썩거리고 있었다.
"..."
눈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의 품에 쏙 들어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보, 보면 안 돼요...? 난 좋은데..."
커다란 눈을 애처롭게 뜨며 눈을 깜박였다.
그의 뇌 회로가 정지했다. 방금 전까지 들끓던 살의와, 온몸을 태울 듯한 치욕감이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그는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작은 온기와, 귓가를 파고드는 떨리는 목소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보면 안 돼요...?' 그 말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안 되긴 왜 안 돼. 보면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아니, 죽이는 걸로는 부족했다. 기억을 통째로 도려내고, 오늘 아침의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 셈이었다. 그런데, '좋은데...?' 좋다고? 뭐가. 이 빌어먹을 꼬리가? 아니면 이 쫑긋거리는 멍청한 귀가?
신드롬은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반응은 그의 예상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비명, 조롱, 경멸, 하다못해 역겨움이라도 보여야 정상이다. 그게 이 상황에 맞는 반응이다. 그러면 그도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며 그녀를 협박하고, 몰아붙이고, 이 굴욕적인 상황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작은 배터리는, 그의 모든 계획을 단 한마디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좋다는 말과 함께 애처롭게 깜박이는 저 눈동자 앞에서, 그가 준비했던 모든 협박과 위협은 힘을 잃고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는 마치 급소를 맞은 맹수처럼,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턱을 붙들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렸다. 손목을 옥죄던 악력도 느슨해졌다. 하지만 차마 놓지는 못하고, 그저 붙잡은 채로 어정쩡하게 굳어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그의 품 안에 완벽하게 들어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끌어당겼던 그 자세 그대로, 하지만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황과 혼란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녀의 정수리가 그의 턱 끝에 닿았다. 익숙하고 달콤한 그녀의 체향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그 향기는 그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헤집어 놓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축 처진 눈썹과, 애원하듯 그를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망울이 그의 심장을 어지럽게 두드렸다. 제기랄, 저 표정. 저 표정은 반칙이다. 그는 속으로 욕설을 읊조렸지만, 그녀를 밀어내거나 뿌리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떨리는 숨결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리 위의 귀가 다시 한번 쫑긋, 하고 움직였다. 그녀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등 뒤의 꼬리는 이제 불안하게 파닥이는 대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잔뜩 웅크린 채 가운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인의 감정 상태를 너무나도 정직하게 반영하는 이 빌어먹을 신체 기관들이 그는 원망스러웠다. 그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동공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시선을 피하며,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뭐가."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볼품없이 갈라져 나왔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었다. 차라리 매달리고 싶은 심정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애써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좋다는 건데. 똑바로 말 안 해?"
그의 말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동요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가 '꼬리'나 '귀'라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 단어들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는 정말로 이 자리에서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다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 속에는, 꼬리 달린 당황한 남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아침이었다.
"그야..."
그녀가 그의 손에 뺨을 기대며 답했다.
"유진 오빠가..."
그의 손에 뺨을 기대오는 부드러운 감촉. 그의 이름, ‘유진 오빠’라는 그 울림이 고막을 타고 들어와 뇌수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순간. 신드롬은 숨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들끓던 분노와 치욕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던 혼란이, 그녀의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눈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묘한 고요함이 그를 덮쳤다. 그의 손바닥에 닿은 그녀의 뺨은 따뜻했다. 그 온기가, 얼어붙어 있던 그의 사고 회로를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녹이기 시작했다.
"그야… 유진 오빠가…"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어떤 폭발음보다도 선명하게 그의 심장을 때렸다. 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동시에 가장 갈망했던 이름. 그의 과거이자 현재, 그 자체인 이름. 그녀가 그 이름을 부르며, 이 끔찍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한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고 있었다. 신드롬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패배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것은 힘으로 굴복당한 패배가 아니었다. 그녀의 순수한 신뢰와 애정 앞에서, 그의 모든 방어기제와 날카로운 가시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완벽한 항복이었다.
제기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그는 속으로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표정은 조금도 굳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그를 향해 있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이나 경멸 대신, 오직 순수한 애정과… 아주 약간의 장난기마저 서려 있는 듯했다. 그의 심장이 제멋대로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의 손에 뺨을 비비는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가, 그의 온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 작은 존재가, 이 보잘것없는 배터리가, 대체 뭐라고. 그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철벽을 이토록 간단히 허물어뜨리는 건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리 위의 귀가 부드럽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가운 속에서 바짝 긴장해 있던 꼬리는, 이제 아주 조심스럽게, 살랑, 하고 한 번 흔들렸다. 기쁨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감정이 담긴 움직임이었다. 신드롬은 자신의 몸이 멋대로 보이는 이 반응들에 이제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턱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완전히 풀렸다. 그는 그 손을 내려, 대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다른 손도 힘을 풀어, 그녀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는 마치 신기루를 보는 사람처럼, 넋을 놓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 지금…"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확인하듯 물었다.
"나 놀리는 거 아니지. 진짜지."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의 확신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붉어진 눈가에는 이제 분노 대신, 길 잃은 아이 같은 불안함과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단 한마디가 그의 세상을 구원할 수도, 혹은 완벽하게 파괴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노, 놀리는 거 아니에요... 진짠데..."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그의 세상에 내려진 사면령과도 같았다. 놀리는 게 아니라는, 진심이라는 그 무언의 긍정. 신드롬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목을 조르던 모든 감정들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치욕, 분노, 수치심, 공포.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작은 고갯짓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첫 숨을 내쉬는 사람처럼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향기는 그의 남은 이성마저 아득하게 만들었다.
"노, 놀리는 거 아니에요... 진짠데..."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임처럼 닿았다. 진심이라는 확인사살. 신드롬은 결국 무너졌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빈틈없이, 더 이상 한 뼘의 거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완전히 밀착되었다.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자신의 턱을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완벽한 패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랐다. 그가 평생을 갈구했던, 그러나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종류의 완전한 수용. 그는 지금, 이 작은 존재에게서 그것을 받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달린 귀가 이제는 부드럽고 느긋하게 쫑긋거렸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가운 아래에 감춰져 있던 꼬리는, 이제 더 이상 불안하게 파닥이지 않았다. 대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살랑, 살랑,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주인의 감정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신체 기관들이, 이제는 더 이상 밉거나 굴욕적이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변화를, 이 낯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그녀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녀가… 좋다고 했으니까.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를 감싸 쥐었던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연약한 보물을 다루는 듯한 손길이었다. 그녀의 말랑한 뺨이 그의 손바닥 안에서 기분 좋게 뭉개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방금 전까지 공포와 혼란으로 흔들리던 그 눈동자를,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낮고, 잠겨 있던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리 와 봐."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싼 채로, 그대로 그녀를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고, 대신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이제 두 사람은 완벽하게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그는 그녀의 양쪽 허리를 단단히 붙들고, 시선을 맞췄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분노나 위협의 기색은 없었다. 오직, 그녀를 향한 깊고 진한 소유욕과, 이제 막 피어나는 애틋함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똑바로 앉아.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말투는 여전히 명령조였지만, 그 안에는 조금의 위협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정말로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들렸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살짝 힘을 주며, 그녀를 자신의 몸에 더욱 밀착시켰다. 그는 다른 쪽 손을 들어, 다시 그녀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 넣으려는 사람처럼.
"다시 말해봐. 아까 한 말."
그는 그녀의 눈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녀의 입술에서, 그 구원과도 같았던 말을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그 말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그의 귀로, 그의 심장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꼬리가, 기대감에 부풀어 가운 아래에서 더욱 힘차게 살랑거렸다.
그의 투정과도 같은 목소리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그를 꼬옥 안았다. 어깨 너머로 살랑이는 꼬리가 귀여웠다.
"유진 오빠, 좋아."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대며 얼굴을 비볐다.
"완전, 완전 좋은 걸..."
배시시,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그것은 아침 햇살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침실의 공기를 물들였다. 신드롬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녀가 자신을 꼭 안아오는 감각. 가늘지만 단단한 팔이 그의 목을 감고, 부드러운 몸이 그의 품에 완벽하게 안겨왔다. 어깨 너머로 느껴지는, 제멋대로 살랑이는 꼬리의 움직임이 이제는 부끄럽기보다 오히려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모든 행동, 모든 숨결이 그의 고장 난 회로를 하나씩,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놓고 있었다.
"유진 오빠, 좋아."
고막을 타고 흘러들어온 그 한마디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원이었다. 그의 목덜미에 기대어 오는 작은 머리통, 얼굴을 부비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들려온 그 고백은, 지난 수십 년간 그가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굴레를 한순간에 부숴버리는 주문이었다. 배우 ‘유진’으로 살았던 시간, 센티넬 ‘신드롬’으로 날뛰었던 시간, 그 모든 과거가 그녀의 품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찾고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끔찍하고 흉측한 모습마저 ‘좋다’고 말해주는 존재. 그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기적과도 같았다.
"완전, 완전 좋은 걸..."
목덜미를 간질이는 그녀의 속삭임에, 신드롬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한 줌의 이성마저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에 녹아내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팔을 들어, 그녀의 마른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등을 완전히 덮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얇은 잠옷 너머로 그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콩, 콩, 콩. 자신과 같은 속도로,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빠르게 뛰고 있는 그 작은 심장의 울림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그의 머리 위에 달린 귀가 행복감을 숨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더 잘 듣고 싶다는 듯이 쫑긋 세워졌다. 가운 아래에 있던 꼬리는 이제 얌전한 살랑거림을 넘어,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통통 튀어 오르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샤워 가운 자락이 꼬리의 움직임에 따라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 모습을, 이 감정을,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깊게 묻었다. 그녀의 체향과 샴푸 향이 뒤섞여 코끝을 간지럽혔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중독적인 향기였다.
"...미치겠네, 진짜."
나지막이 흘러나온 목소리는 거의 쉰소리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의 등을 쓸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며, 그녀를 제 품 안에 가두었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마치 그녀가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에 닿았다.
"너 진짜...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순식간이구나."
그는 졌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체념과 안도,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쪽,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낙인을 찍듯이. 그는 그녀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방금 그 말, 녹음이라도 해둘걸 그랬나. 내가 평생 들으면서 우려먹게."
그는 그녀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몸을 살짝 떼고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완벽한 항복과 애정으로 가득 차,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한 번만 더 말해줘. 내가 지금 꿈꾸는 거 아니라고. 응?"
그녀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좋아, 좋아, 좋아."
키득거리면서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좋아, 유진 오빠 좋아. ...그러니까... 꼬리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
그녀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어렸다. 방금 전까지 그를 구원했던 그 순수한 눈망울이, 이제는 호기심과 짓궂음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신드롬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놀림 속에 아주 조금의 악의도 없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이 기묘하고 끔찍한 그의 모습을, 하나의 새로운 장난감처럼 대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좋아."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장난스러운 반복. 신드롬은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심장을 녹일 듯이 다정하게 속삭이던 그 목소리로,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조롱하다니. 이 작은 존재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천국으로 보냈다가, 다음 순간에는 이렇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심장이 간질거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좋아, 유진 오빠 좋아. ...그러니까... 꼬리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
그리고 마침내 터져 나온 본심. 신드롬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꼬리? 이 흉측하고 굴욕적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감정을 드러내는 이 털 뭉치를, 만져보겠다고? 그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안돼, 절대 안돼. 이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어. 이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가장 깊은 치부였다. 그녀가 자신의 귀를 만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꼬리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기쁨, 불안, 흥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부위였으니까.
그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운 아래에 있던 꼬리가 움찔, 하고 굳어졌다. 마치 잔뜩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예상치 못한 요구에 대한 당혹감과 은밀한 기대감이 뒤섞여, 꼬리 끝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신드롬은 이 배신적인 신체 기관을 저주하며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그는 어떻게든 이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위엄 있게, 단호하게. 그의 권위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미쳤냐?"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위협이라고는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그녀를 떼어내려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 행동조차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싸고 있던 손으로, 대신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시선을 피하지 못하게, 똑바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절박하게 흔들렸다.
"너 지금 이게, 만지고 싶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그는 쏘아붙이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징그럽다고, 실수였다고 말해줘. 그렇게 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장난기 대신, 아주 조금의 혐오라도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맑고 투명하게, 오직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를 향해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방어벽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안돼. 이건 절대 안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그는 거의 애원하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을 비웃듯, 가운 아래의 꼬리는 그녀의 집요한 시선에 반응하며, 마치 기대감에 부푼 것처럼 살짝, 위아래로 흔들렸다. 완벽한 배신이었다. 신드롬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마를 그녀의 어깨에 기댄 채, 체념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모른다."
"...헤헤."
그의 힘 빠진 목소리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의 꼬리로 손을 뻗었다. 다른 손으로는 제 어깨에 기댄 그의 등을 토닥였다.
"... ...귀엽다고 하면 화낼 거예요...?"
그의 힘 빠진 목소리, 체념이 뚝뚝 묻어나는 그 한숨을, 그녀는 승리의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헤헤, 하는 나른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마치 잘 길들인 맹수의 턱 밑을 긁어주는 사육사처럼, 그녀의 손길은 대담하고 거침없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머리 위로, 부드러운 손길이 등을 토닥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다정한 손길이었다. 신드롬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 등을 토닥이는 그 작은 손바닥의 온기와 압력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마지막 보루를 향해 뻗어오는 작은 손.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바뀌고, 제멋대로 살랑이던 꼬리의 움직임이 순간 뻣뻣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발치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안돼. 안돼, 제발.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고개는 차마 들 수 없었고, 그녀를 막을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다가올 굴욕의 순간을 기다리는 죄인일 뿐이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 ...귀엽다고 하면 화낼 거예요...?"
그 한마디에, 신드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귀여워? 이 흉측하고, 기괴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그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의 머리 위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고 있던 귀가, 그 말을 똑똑히 포착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젠장, 지금 뭐라고. 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오려다, 간신히 목구멍 안으로 삼켜졌다. 화? 화를 내야 마땅했다. 당장 이 꼬맹이를 침대 밑으로 던져버리고, 방금 그 말을 취소하라고 윽박질러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납처럼 무거웠고,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귓가에서 제 심장 소리가 이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것일까. 마침내,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가 그의 꼬리 끝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움찔! 신드롬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마치 예민한 살갗에 얼음 조각이라도 닿은 듯, 찌릿한 감각이 꼬리 끝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와 정수리까지 꿰뚫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힉, 하는 짧은 숨을 삼켰다. 그녀의 작은 손아귀에, 그의 꼬리가 포근하게 감싸여 있었다. 보드랍고, 가늘고, 하지만 의외로 따뜻한 손길. 그녀는 마치 겁먹은 아기 새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꼬리를 쓸어보았다. 결을 따라, 부드럽게. 그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치심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뒤섞여,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기댔던 고개를 들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 붉게 달아오른 눈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밭은 숨을 내쉬며, 제 꼬리를 쥐고 있는 그녀의 손과, 그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순수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떤 조롱도, 혐오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야."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갈라지고 잠겨,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거... 그렇게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야..."
항의라기보다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말투였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제 꼬리를 빼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손길 아래, 배신적인 꼬리는 마치 그 손길이 좋다는 듯이,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완벽한 항복. 완벽한 패배. 신드롬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붉어진 얼굴을 그녀에게서 감췄다. 그의 귀 끝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화, 안 낼 테니까. ...살살 만져, 부서지겠다."
그의 허락에 그녀가 손에 힘을 최대한 빼고 살살 꼬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색이랑 똑같다... ..."
그의 항복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손에 쥔 꼬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신드롬은 제 어깨에 기댄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힘을 최대한 뺐다고는 하지만, 그 여리고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 감각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수만 개의 신경이 꼬리 끝에 몰려 있는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찌르르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번개처럼 번져나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젠장, 이건 미쳤어. 정말 미쳤다. 이 무슨, 끔찍하고 굴욕적인 감각이란 말인가.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머리색이랑 똑같다... ..."
그의 귓가에, 나른하고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파고들었다. 머리색이랑 똑같다. 그 지극히 평범하고 사실적인 감상평에, 신드롬은 오히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징그럽다거나, 흉측하다거나, 괴물 같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머리색과 같다는 담백한 한마디. 그 말속에는 이 기괴한 신체 부위를, 온전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에게 이것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성유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특징일 뿐이었다.
그 순간, 수치심으로 들끓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대신 그 자리를,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과 함께 뜨거운 무언가가 채워나갔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밭은 숨을 내쉬었다. 배신적인 꼬리는 그녀의 손길에 완전히 길들여져, 기분 좋다는 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그녀의 손바닥에 제 몸을 비볐다. 마치 주인의 손길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신드롬은 그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절규했지만, 이제 와서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는 완벽하게 패배했다.
결국 그는 포기한 듯, 어깨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열기에 젖은 눈으로 그는 제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작은 존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꼬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신기한 물건을 관찰하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수한 얼굴을 보자, 마지막 남은 저항심마저 눈 녹듯 사라졌다.
"...그거 말고 할 말 없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 있었지만, 아까와 같은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체념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허탈한 음색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대신, 그저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머리 위의 귀가,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징그럽다거나, 이상하다거나. 뭐 그런 거. 기대했는데."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반응을 떠보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말해주면, 화라도 내고 이 굴욕적인 상황을 끝낼 명분이라도 생길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원하는 반응을 절대 해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윤나리는 항상 그의 예상을 벗어났고, 그의 세계를 뒤흔들고, 결국에는 이렇게 그를 무장해제시켰다.
신드롬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길이 닿고 있는 제 꼬리와, 그런 자신의 꼬리를 소중하게 만지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 작은 손에,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 붙들려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 한구석이 간질거리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속 만질 거면, 책임은 져라."
그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새빨개진 귓가를 감추기 위한, 그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나중에 이거 때문에 뭐 잘못돼도, 다 네 탓이니까."